<뉴스파노라마>국내최고의 황금사리병 1400년만에 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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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영신 작성일2007.10.24 조회1,667회 댓글0건본문
<앵커맨트>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430년 전.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세운
왕흥사 목탑터에서
국내 최고의 황금 사리병이 발굴됐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백제 사리병의 출현으로
학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주불교방송 전영신 기자의 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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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이월/십오일백제/왕창위망왕/
자위찰본사/리이매장시/신화위삼'
부여 왕흥사 목탑터에서 발굴된
황금 사리병을 담은 청동 사리함의
몸체에 새겨진 명문입니다.
정유년 2월15일 백제왕 창, 즉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절을 세우고
본래 사리 두 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발굴당시 황금 사리병은 은으로 만든
사리 외병에 봉안됐으며 은제 사리병은 다시
청동사리함에 담긴채로 출토됐습니다.
높이 4.6㎝, 지름 1.5㎝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발견된 황금 사리병은 그러나
청동사리함의 몸체에 적힌 기록과는 달리
사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출토된 황금 사리병은
국내 최고의 것인 동시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백제 사리병이 출현했음을 뜻합니다.
학계는 백제 금동대향로 발견 이래
백제의 고도에서 발굴한 최대의 성과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ins 1.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김용민 소장
따라서 그동안 삼국사기 기록에 근거해
600년에 축조되고 634년에 낙성된 것으로 알려졌던
왕흥사의 실제 축조연대가 577년이라는 것과
위덕왕이 597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아좌태자 이외 또 다른 왕자를 두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특히 왕흥사가 567년에 축조된 능산리사보다
10년 늦게 조성됐다는 점이 밝혀짐에 따라
6세기 중반 백제 사찰 축조양식의 변화를 비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BBS NEWS 전영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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