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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선권 여행작가 "비운의 왕 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 육지속 외딴섬에는 처연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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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수 작성일2023.06.2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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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연 : 김선권 여행작가    

■ 진  행 : 연현철 기자

■ 2023년 5월 15일 목요일 오전 8시 30분 '충북저널967' (청주FM 96.7MHz 충주FM 106.7MHz)

■ 코너명 : 여행스케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방송 다시 듣기는 BBS청주불교방송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습니다)

 

▷연현철 : 전국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 ‘여행 스케치’ 오늘도 여행전문가 김선권 작가 모셨습니다, 김 작가님 나와계시죠? 안녕하세요.

 

▶김선권 : 안녕하세요. ‘여행 그려주는 남자, 김선권’입니다.

 

▷연현철 : 오늘은 어디로 가나요?

 

▶김선권 : 오늘은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가보겠습니다. 슬픈 역사가 서려 있는 유적지 청령포는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조선조 비운의 왕, 단종의 유배지였습니다.

 

▷연현철 : 단종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며 단종이라고 불리지 않았습니까?

 

▶김선권 : 단종하면 생각나는데 비운의 왕이죠. 문종이 승하하고 왕위를 이었을 때, 단종의 나이는 불과 12살에 불과했습니다. 1년 후 계유정난으로 삼촌에게 모든 실권은 빼앗기고, 또 2년이 지나선 왕위마저 빼앗겼고 다시 2년이 지난 17세에 목숨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는 말이 많습니다. 우선 『세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단종이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기록했지만, 『숙종실록』에서는 사약을 가지고 온 금부도사 왕방연이 차마 단종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 못하자 함께 따라온 하급관리에 의해 교살을 당했다는 등 단종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여러 형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모든 게 설일 뿐이고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연현철 : 정말이지 작가님 말씀대로 비운의 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 나이에 왕이 즉위할 경우, 보호할 방법이 없었나요?

 

▶김선권 : 아버지인 선왕 문종이 승하할 당시 어린 나이였던 단종은 정치적 기반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 경우 대비나 왕비 등이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단종의 경우에는 할머니인 소헌왕후와 어머니 현덕왕후가 모두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염려했던 문종은 황보인과 김종서 등의 대신들을 불러 단종을 잘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고, 이러한 고명대신들은 단종을 왕위에 올린 뒤 왕권에 위협이 되는 왕실의 인척을 견제했지만, 수양대군 일파는 계유정난을 통해 조정을 장악하고 결국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연현철 : 사실상 그를 지켜줄 사람이 전혀 없었던거네요.

 

▶김선권 : 그렇습니다. 청령포에 가기 위해선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청령포는 남한강의 지류인 아름다운 서강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쪽으로 험준한 산이 가로막아 육지 속의 섬처럼 고립된 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매표소가 강보다 높은 지대에 있는데 내려다보면 학창 시절 배웠던 사행천, 곡류천이 무엇인지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연현철 : 그렇군요. 배는 얼마나 타야 하나요? 강을 건너는 거니까 금방 가겠죠?

 

▶김선권 : 사실 이 정도를 건너려고 배를 타야 하나 할 정도로 짧습니다. 직선거리로 50m 내외입니다. 다리를 놓으면 편하게 다닐 수 있을 텐데, 왜 이 짧은 거리를 배를 타고 건너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하시는 분들도 계실 정도입니다. 좀 과장하자면 징검다리를 놓아도 될 정도의 거리입니다. 그런데 청령포는 명승지로 지정이 되어 있어서 다리를 놓는 등의 개발행위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강을 건너 청령포에 내려 50m 남짓 자갈밭을 지나 소나무 숲이 시작되는 곳에 금표비가 서 있습니다. 금표비는 이 비석을 기준으로 동서로 300척, 각각 90m 되겠죠? 남북으로는 490척의 공간에 그 누구도 들어가서도 나와서도 안 된다는 경고문입니다. 이것을 어길 시에는 장형 100대로 다루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은 ‘단종이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연현철 : 그런데 장형이라면 곤장을 말하는 거죠? 제가 알기론 곤장이 100대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 정도면 완벽한 고립 아닌가요?

 

▶김선권 : 금표비가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되어 있을 당시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이게 영조때 세워졌다고 하더라고요. 훗날 성종 이후로 단종이 복권되면서 백성들이 청령포에 출입해 벌채하거나 농사짓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연현철 : 그렇군요. 그렇다면 금표비가 세워진 시기부터 단종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변화는 왜 생겼을까요?

 

▶김선권 :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입니다. 사실, 단종의 복권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조 이후의 모든 임금은 세조의 후손들이고 이들의 정통성은 세조의 정통성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종의 복권은 세조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는 동시에, 후대 임금들의 정통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정권의 기반을 흔들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단종의 복권은 이루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위패가 왕실 사당인 종묘에 모셔지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도 그를 왕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유로는 단종에 대한 대중의 동정심과 더불어 16세기 후반의 지배층 교체를 들 수 있습니다. 단종의 비극은 사림파가 집권하기 이전이었던 훈구파 시대의 일이었습니다. 수양대군이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일은 일반 대중의 정서에 배치됐을 뿐 아니라, 사림파의 이념인 왕도(王道) 정치에도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조선 초기의 지배 세력이었던 훈구파와 조선 중기의 새로운 지배 세력 사림파의 정치적인 충돌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연현철 :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개입된 거네요.

 

▶김선권 : 네. 그리고 이 문제를 가장 잘 활용한 임금은 숙종이었습니다. 그는 단종을 복권시킴으로 생기는 손실, 즉 수양대군 이미지의 흠집보다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되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종과 그에게 충성을 바친 사육신의 이미지를 활용하면, 극심한 당쟁의 소용돌이에 놓인 숙종 자신에 대한 신하들의 충성심을 높일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었지요. 드라마 속에서의 이미지 때문에 성종을 장희빈과의 관계만 생각하기 쉬운데, 성종은 정말로 똑똑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묘호인 성종의 성자가 이룰 성(成)자잖아요. 묘호는 임금이 죽은 다음에 붙여지는 것인데, 성종은 대체로 국가 체제와 제도 정비를 완성시킨 군주에게 붙여지는 묘호입니다. 장희빈과 사랑만 했다면 성종이 아니었겠지요.

 

▷연현철 : 네. 생각해보니까 저도 성종하면 떠오르는 게 경국대전, 이런 것들이 있지만, 장희빈과의 사랑이었던 것 같고요.

 

▶김선권 : 네. 보통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죠. 금표비를 지나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잠시 걸어가면 단종 어소에 다다릅니다. 숲길이 참 예쁜데요. 숲길엔 벤치 등도 구성돼있어서 거기 앉아 책을 읽는 분들도 많아요. 단종이 머물렀던 곳을 단종 어소라고 부르는데, 이곳에는 시선을 끄는 소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분명히 뿌리는 처소밖에 내렸거든요. 근데 급격하게 휘어져서 단종 어소 안으로 굽어져 있습니다. 마치 단종에게 공손하게 절을 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이 소나무를 엄흥도 소나무라고도 합니다. 귀양살이하던 단종이 세조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신이 지금의 동강인 금장강에 버려졌는데, 세조는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았는데,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렀던 충신이 엄흥도였습니다.

 

▷연현철 : 그렇군요. 단종 어소에 대해 소개해주시고 계신데요, 작가님. 오늘 청취자분들 오해하지 마십쇼. 여행스케치 입니다. 역사스케치가 아니고요. 아무래도 여행이 역사고, 역사가 여행이다 보니까 그런 건데, 작가님 시간 관계상 단종 어소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다시 한 번 거론해주시겠습니까?

 

▶김선권 : 네. 알겠습니다.

 

▷연현철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선권 : 네. 감사합니다.

 

▷연현철 : 지금까지 여행스케치 김선권 작가와 여러분 함께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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