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 라디오 충북역사 기행] - 조혁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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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수 작성일2023.03.01 조회738회 댓글0건본문
어제가 기미년 만세운동이 일어난 삼일절이었는데요,
오늘 방송은 ‘청주 배창근의 의병 활동과 순국’ 이야기를 준비했다구요.
먼저 배창근이라는 인물을 간단히 소개해줄까요.
답변:
청주 북문로에 살았던, 흔치 않은 기독교인 출신의 의병이다.
1869년에 태어나 1909년에 순국했다.
대한제국기 군대인 청주진위대 소속의 하사관이었던 그는,
1907년 8월 청주진위대가 강제 해산 당하자 의병으로 전환한다.
이후 진천 초평에서 일본병사 2명을 살해했고, 그로 인해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질문: 대한제국기 군대인 청주진위대는 구체적으로 어떤 군대인가요?
답변:
고종은 1895년 부인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하자,
극도의 불안은 느낀 끝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른바 ‘아관파천’이죠.
그후 1년만에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부국강병책을 제시하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설립된 지방군대의 하나가 ‘청주 진위대’이다.
청주진위대는 과거 청원군청 뒷건물인 청녕각을 부대 건물로 사용하였다.
질문: 당시 청주 진위대 해산 모습이 사료로 남아 있다면서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답변:
일제강점기 청주에 살았던 오쿠마 온보라는 사람이 <청주연혁지>를 썼는데,
거기에 청주진위대 해산 장면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착검과 동시에 청녕각 윗쪽에서 진위대 방사가 있는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진격해 와서 일제히 총구를 겨누게 되었다.
진위대장은 이에 힘을 얻어 포고문을 낭독하였다. 이때에 들을 수 있었던
소리는 늠름하였으나
진위대 병사들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두 뺨에 흘러내렸다.”
질문: 강제 해산당한, 대한제국기의 군인 배창근은 그후 어떤 선택을 하나요.
답변:
배창근은 고민 끝에 의병의 길은 선택하게 된다.
이것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아들 배민수가 쓴 ‘배민수 자서전’에 상세히 수록돼 있다.
“아버지는 일본이 우리의 군대를 제멋대로 해산시키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생업을 찾는 대신 일본에 대항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는 뜻을 같이 하는 부하들과 함께 청주 북문동 ‘박과부 집’에서
비밀 모임을 가졌다.
거기서 아버지를 의병대장으로 하는 결사대가 편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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