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여행스케치] - 김선권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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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수 작성일2022.03.25 조회837회 댓글0건본문
여행 그려주는 남자, 로드그래퍼 – BBS불교방송 ‘여행스케치’ 경주 동궁과 월지
□ 출연 : 김선권 여행작가
□ 진행 : 연현철 기자
□ 프로그램 : 청주BBS 충북저널 967
□ 인터뷰 시간 : 3월 24일(목) 08:41 ~ 08:52
[앵커]
전국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 ‘여행 스케치’ 오늘도 여행전문가 김선권 작가님 나와계십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김]
안녕하세요. ‘여행 그려주는 남자, 김선권’입니다.
[앵커]
오늘은 어디입니까?
[김]
신라의 옛 도읍 경주에 있는 동궁과 월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동궁과 월지는 밤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또한 동궁과 월지 인근에는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핑크뮬리가 피어나서 방문객들에게 포토존이 되어주는 곳입니다. 밤에도 낮에도 아름다운 곳,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별궁이 자리했던 궁궐터, 동궁과 월지로 가보겠습니다.
[앵커]
동궁과 월지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가보았다 안다 모른다 정도.
[김]
동궁과 월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별궁이 자리했던 궁궐터로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던 곳이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호칭은 대부분 그의 거처와 관련이 있습니다. 왕의 업무공간을 정전이라고 하는데, 신하의 입장에서 왕은 정전 아래서 뵙기 때문에 전하, 왕비는 거처하는 곳이 궁궐의 한 가운데 있기에 중전, 왕세자는 차세대 군주라 해가 뜨는 동쪽에 거처하기에 동궁이라고 합니다.
[앵커]
그래서 동궁마마라고 하는 거군요.
[김]
그렇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동궁과 월지 안에 있었던 임해전(臨海殿)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귀빈을 접대하였던 곳이었습니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입니다.
[앵커]
경순왕과 왕건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던 장소군요. 후삼국 시대를 마무리하는 역사적 현장을 지켜본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김]
그렇습니다. 동궁과 월지는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안압지라고 했었는데, 2011년에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에 이곳을 칭하는 이름이었고, 신라 시대의 명칭은 지금과 같은 동궁과 월지였다고 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그 이름에 걸맞게 동궁과 월지 하늘에 초승달에 멋들어지게 걸려있었습니다.
[앵커]
안압지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들어보았다 못 들어보았다. 또는 앵커님이 학교 다닐 때도 안압지였다 정도.
[김]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때,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집니다.
이렇듯 화려했던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라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며, 이곳을 기러기 '안(雁)'자와 오리 '압(鴨)'자를 써서 '안압지(雁鴨池)'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앵커]
안압지란 말은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군요
[김]
그렇습니다. 신라가 멸망하고 폐허처럼 방치되었던 동궁과 월지는 지금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남원 광한루와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부터 약 4개월 동안 동궁와 월지 수목 탐방로 정비사업으로 야간에는 폐쇄되어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없었는데, 어제가 공사가 마무리되는 날이었습니다. 4개월 만에 동궁과 월지의 야경이 돌아왔습니다.
□ 출연 : 김선권 여행작가
□ 진행 : 연현철 기자
□ 프로그램 : 청주BBS 충북저널 967
□ 인터뷰 시간 : 3월 24일(목) 08:41 ~ 08:52
[앵커]
전국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 ‘여행 스케치’ 오늘도 여행전문가 김선권 작가님 나와계십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김]
안녕하세요. ‘여행 그려주는 남자, 김선권’입니다.
[앵커]
오늘은 어디입니까?
[김]
신라의 옛 도읍 경주에 있는 동궁과 월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동궁과 월지는 밤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또한 동궁과 월지 인근에는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핑크뮬리가 피어나서 방문객들에게 포토존이 되어주는 곳입니다. 밤에도 낮에도 아름다운 곳,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별궁이 자리했던 궁궐터, 동궁과 월지로 가보겠습니다.
[앵커]
동궁과 월지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가보았다 안다 모른다 정도.
[김]
동궁과 월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별궁이 자리했던 궁궐터로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던 곳이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호칭은 대부분 그의 거처와 관련이 있습니다. 왕의 업무공간을 정전이라고 하는데, 신하의 입장에서 왕은 정전 아래서 뵙기 때문에 전하, 왕비는 거처하는 곳이 궁궐의 한 가운데 있기에 중전, 왕세자는 차세대 군주라 해가 뜨는 동쪽에 거처하기에 동궁이라고 합니다.
[앵커]
그래서 동궁마마라고 하는 거군요.
[김]
그렇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동궁과 월지 안에 있었던 임해전(臨海殿)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귀빈을 접대하였던 곳이었습니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입니다.
[앵커]
경순왕과 왕건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던 장소군요. 후삼국 시대를 마무리하는 역사적 현장을 지켜본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김]
그렇습니다. 동궁과 월지는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안압지라고 했었는데, 2011년에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에 이곳을 칭하는 이름이었고, 신라 시대의 명칭은 지금과 같은 동궁과 월지였다고 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그 이름에 걸맞게 동궁과 월지 하늘에 초승달에 멋들어지게 걸려있었습니다.
[앵커]
안압지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들어보았다 못 들어보았다. 또는 앵커님이 학교 다닐 때도 안압지였다 정도.
[김]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때,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집니다.
이렇듯 화려했던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라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며, 이곳을 기러기 '안(雁)'자와 오리 '압(鴨)'자를 써서 '안압지(雁鴨池)'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앵커]
안압지란 말은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군요
[김]
그렇습니다. 신라가 멸망하고 폐허처럼 방치되었던 동궁과 월지는 지금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남원 광한루와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부터 약 4개월 동안 동궁와 월지 수목 탐방로 정비사업으로 야간에는 폐쇄되어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없었는데, 어제가 공사가 마무리되는 날이었습니다. 4개월 만에 동궁과 월지의 야경이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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